• Hezin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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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를 암시하는 것은 당시 유행이었다. 소리의 암시는 시, 문학, 심지어 회화, 특히 20세기 초 음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클로드 드뷔시, 마누엘 데 파야, 모리스 라벨 같은 작곡가들에게 악기 소리는 종종 소음의 자리에, 게다가 소음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환기시키는 또 다른 악기 소리 자리에 놓인다. 이 날카로운 피아노 장식음은 물이다, 현악기의 이 떨림음은 바람이다, 오른손으로 연주한 장식 없는 간결한 테마는 목동의 피리 소리다… 무성 영화에서 어떤 소리에 대응하는 영상, 예컨대 종소리를 암시하는 종의 영상은 드뷔시에게는 호른 연주곡에 대응하는 피아노 테마와 동등하다.

      예를 들어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파업>(1925)에서 노동자 봉기 시퀀스는 울리는 공장 사이렌을 집요하게 반복 클로즈업하여 시각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한동안 안 쓰이던 인서트가 다시 쓰이게 된 것은 두 가지 기능 때문이다. 한편으로 인서트는 거기에 줄곧 소리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문제는 소리의 원천을 보여주는 영상뿐만 아니라 그 장면 전체에서 소리가 연속으로 울리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몇 영화에는 이중 인화가 사용된다.) 다른 한편, 소리의 원천을 보여주는 영상은 시각적 후렴구가 되며, 군중이 쇄도하는 이 혼란스러운 시퀀스에 통일성을 부여하게 된다.

       

      미셸 시옹, 『영화, 소리의 예술』 이윤영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24) 22-2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