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시선은 우리가 소재의 자리에 있는 경우에만 우리에게로 향한다. 관람자로서 우리는 추가 요소일 뿐이다. 우리는 화가의 시선에 받아들여지지만 또한 화가의 시선에 의해 축출되고 우리보다 먼저 언제나 거기에 있던 것, 즉 모델로 교체된다. 그러나 역으로 화가의 시선은 그림의 바깥으로, 화가와 마주대하는 허공을 겨냥하는 것으로서, 관람자들이 오는 그만큼 많은 모델을 받아들이는 셈이며, 그 명확하나 중립적인 장소에서 주시하는 자와 주시되는 자는 끊임없는 교환에 가담한다. 어떤 시선도 안정적이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해 캔버스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시선의 중립적 궤적 속에서 주체와 객체, 관람자와 모델의 역할이 한없이 뒤바뀐다.